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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도스 (カスドース, Casdoce) № 002 본문

지구식품관청/지구식품관기획

카스도스 (カスドース, Casdoce) № 002

황후펭귄 2021. 4. 9. 15:49

좋은 과자, 위대한 과자

카스도스는 나가사키현 히라도(平戸)의 명물로, 카스테라의 2차가공을 통해 만들어진 양과자(洋菓子)[각주:1]입니다. 명칭인 '카스도스'는 일본에서 독자적으로 포르투갈어 어휘 2개를 합성시킨 단어로, Castela(카스텔라) + Doce(도스, =달다) ☞ Cas-Doce의 원리입니다. 후술하지만 원형은 포르투갈의 전통 후식의 일종인 소파 두라다(Sopa Dourada)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카스도스는 카스테라의 탄 거 갈색 부분은 떼고, 속 부분을 한두입 크기로 네모나게 소분하여 계란물을 입혀준 뒤, 뜨거운 설탕엿에 잘 말아내어 다시 설탕으로 코팅하여 만듭니다. 카스테라 자체가 설탕 함량이 33%, 계란 함량이 33%인데, 그것도 모자라서 계란을 또 먹이고, 설탕물을 또 먹이고, 설탕을 또 입혀줘서, 카스테라가 가질 수 있는 당 수치 레벨을 최대로 찍어준 과자가 되겠습니다. 저, 당은 평균치로 해달라고 했잖아요! (feat.의사양반)

 

그런데 실제로 먹어보면 '이게 그렇게까지 단 건가?' 라는 의문이 들 정도로 담담(?)한 맛인데, 원재료인 카스테라 자체가 조직이 치밀하기 때문에 달달한 액체들이 깊숙히 스며들지 못하는 까닭에 있습니다. 또한 카스도스로 재가공하는 의의는 눈에 보이는 돈지랄 아우라 효과 생성 및 다과(茶菓)로서의 품격 상승 및 코팅효과로 기대하는 유통기간 연장에 있지, 정말로 단순히 단맛의 끝판을 보여주겠다는 의지는 상대적으로 약한 편이기도 합니다. 이미 같은 분야에서는 순수한 설탕인 별사탕金平糖을 이길 것이 없었고, 현대 과자 기술과 비교한다면 아무리 노력해봤자 원초적인 단맛을 자랑하는 액상과당을 뛰어넘을 수가 없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별로 달지 않다고 느낄 수 있는 점도 고려해야겠습니다.

 

널 찾아낼 것이다. 그리고 먹을 것이다.

카스테라가 실질적인 전국구급 과자로 인지도를 확연히 굳힌 것에 비해, 카스도스는 일본 내에서도 아는 사람을 찾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이른바 대표적인 듣보잡 과자입니다. 도쿄 및 오사카의 유명한 백화점을 수없이 돌아다녀도 이것이 팔리는 걸 도통 찾아보기가 어렵고, 그나마 히라도에서 가장 가까운 대도시 중 하나인 후쿠오카(하카타)에서 조차도 모 백화점이 기껏 1주일에 1번 들여올 정도[각주:2]로, 극악의 입수 난이도를 자랑합니다.

 

일본식 상업 특성상 역사가 오래된 과자라면 원조집의 제품 외에도 카피캣들이 무자비하게 창궐하기 마련인데, 카스도스에서는 그런 현상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오로지 일본의 끝자락인 큐슈에서도 쿠마모토한테 밀려난 낙오지(?) 나가사키, 그 안에서도 중심도시와는 정 반대로 북쪽 끝 구석진 곳에 버려진 쓰리콤보 오지(?)에 자리한 히라도에서도 오로지 단 두 곳, 코게츠도로호(湖月党老舗)와 히라도 츠타야(平戸蔦屋)정도에서만 과점하여 만들어 팔고 있습니다. 다행(?)이도 두 업체 모두 온라인 택배 판매는 진행하고 있는데, 유일한 문제라면 그 배송비가...

 

여튼간 일본인들도 어지간하면 모르는 그런 과자가 뜬금없이 한국에서 갑작스레 입소문에 오르며 메이저(?)로 급부상할 뻔했던 적이 있는데, 이는 KBS의 다큐멘터리 '요리인류'에서 적잖은 비중으로 다루었던 덕입니다.

 

환상적인 과자를 만들려 했다가, 정말로 환상이 되어버린 과자

나가사키 카스테라 문서에서도 언급했지만, 카스테라는 이베리아 출신이라면 누구나 만들 수 있던 간단한 과자로, 네덜란드도 독립 이전에는 카스티야 왕국의 지배하에 있었기 때문에 간접적인 영향으로 그 존재를 알고 있었다고 볼 수 있으며, 카스테라를 만들어 배포했을 주역들이 선교사라는 추정에서, 이미 전국시대 때부터 포르투갈 선교사들에 의해 카스테라는 들어와 있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간주됩니다.

 

유독 나가사키의 카스테라가 유명해진 것도, 쇄국 정책을 시행하는 대신에 데지마를 개항시키고, 그곳에 네덜란드 상인의 상주처가 마련됨에 따라 꾸준히 양과자 생산-소비가 이뤄진 덕에, 궁극적으로 지역 명물화 발전 테크를 확실히 밟을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허나 카스도스의 경우는 사뭇 다른 행보를 밟는데, 사실 '카스도스'가 문서에 기록된 것은 히젠국의 마츠우라번(松浦藩)[각주:3]을 대대로 다스린 마츠라 가문松浦家이 1847년에 완성시킨 과자도감, 「百菓乃図」 뿐입니다. 그것도 달랑 그림 한 점과 이름만 쓰여져 있을 뿐. 이때는 에도 시대의 막바지로, 카스테라는 진작에 일본 전국으로 그 이름을 확고히 해둔 뒤였습니다만, 카스도스는 유입 가능한 시기로 추정할 때 카스테라보다도 빠르게 출세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듣보잡이 되었습니다. 그 원인은 결국 내적 요소 때문으로, 히라도의 영주가 직접 나서서 카스도스의 레시피가 유출되지 못하도록 철저히 막았기 때문입니다.

 

데지마가 활성화 되기 전인 1609년, 히라도에 포르투갈 상인들이 점차 물러가는 대신 네덜란드 상인이 들어왔을 때도 자연스레 카스테라와 콘페이토(별사탕), 와인과 같은 남만산 기호품들이 유입되었고, 이걸 주기적으로 조정에 공물로 보내두어서 높으신 분들의 입맛을 잘 길들여 놓았기에, 쇄국의 특수성에도 불구하고 일본 못잃어 빵맛 못잃어 데지마를 열게 만든 계기를 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 데지마 개항 이후로의 히라도는, 어찌되었건 데지마가 히라도에 있었던 것은 아니었던터라 점점 중간항구 그 이하 수준으로 중요도가 떡락하였고, 이를 타개할 수단으로 비장의 카드적 의미에서 '카스도스'라는 패를 숨겨온 것이 아닐까로 추정합니다. 실제로, 히라도 지방은 에도 시대와 메이지 시대를 걸쳐서, 덴노 왕실에 과자를 납품하는 대표적인 곳으로 이름을 남긴 바가 있습니다.

 

이미 토사구팽 해버렸지만, 유전자 복원하면 어떻게든 되겠지.

묘한 것은, 그런 와중에도 카스도스는 중간에 명맥이 끊긴 바가 있습니다. 그게 정확히 언제인진 알 수 없으나, 과자도감 「百菓乃図」 이 1847년에 쓰여진 것을 감안하면 적어도 에도 말기까지는 그럭저럭 유지가 되었을텐데, 아마 메이지의 폐번치현 이후로 더 이상 지방유지정권(≒지방자치)이라는 개념이 생길 수 없어 봉납 자체가 불필요해짐에 따라 타이쇼 시대 즈음 하여서 기존의 유통구조는 와해되버리고, 그 다음 쇼와 시대의 무리한 전쟁으로 인해 물자가 극도로 후달려 과자 따위를 만들수 없는 상황에 가장 먼저 완전히 사장되었을 것이라는 추정입니다.

 

이를 뒷받침하는 것으로 카스도스 취급점 중 하나인 코게츠도에서도 제시하는 내용에,

"쇼와 4년(1929년), 나가사키에 남만요리 간판을 내건 곳에서 '카스도스 (즙과자)カスドース(汁菓子)'라는 것을 판매하였다."

라는 언급이 있는데, 여기서 서두에 언급한 '카스도스'의 기원이라 생각되는 포르투갈의 소파 두라다를 가리키고 있을 것이라는 추정까지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를 한국식으로 비유하자면, 조선시대의 조정이 망하면서 직장 잃은 수랏간 숙수들이 거리로 나와 궁중요릿집을 차렸는데, 이들이 내놓는 '너비아니'가 일상적으로 칭하던 명칭인 '불고기'로 개명되었지만, 그 불고기라는 어휘가 지금에 와선 물에 빠진 물고기(?)와도 같은 불고기 유사품(??)을 주로 가리키게 되면서 오리지널 불고기(너비아니)는 잊혀져버린, 대략 그런 정황이라 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건, 이때까진 '카스도스'와 '소파 두라다'가 병용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즉, 현재 카스도스와 소파 두라다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하는 까닭에, 과거의 '카스도스'라 불렸던 것이 지금의 형태와 아주 똑같다고 단정할 수가 없게 됩니다.[각주:4]

 

그렇지만 쇼와 초기의 기록 이후로 어떻게 되었는가에 대한 내용을 전혀 찾을 수 없었으며, 그렇찮아도 나가사키라는 곳이 메이지부터는 변두리로 격하되어 지방 특유의 디메리트까지 안고 있던 와중이었는지라, 그런 형태의 보급 또한 생존역사가 그리 길지 않았다고 보여집니다. 이 원인 또한 아무래도 태평양 전쟁의 여파일 것입니다.

 

그러다 1953년에 다시 카스도스가 다시금 데뷔하였는데, 그걸 가능케 한 것이 또다시 과자도감 「百菓乃図」 이었습니다. 모종의 이유로[각주:5] 마츠라 가문이 소장하고 있던 과자도감과 기타 조언사항을 서두에 언급한 두 점포에게 자료로서 제공하였고, 그 중에서 사노코게츠도(佐野湖月)[각주:6]가 내놓은 버전이 1953년 제 1회 전국과자공예전에서 후생대신상[각주:7]을 따내고, 그 영향력으로 1954년(쇼와 29년)에 상표등록까지 따내는 결과를 낸 것입니다.

 

이를 기점으로 하여 카스도스는 포르투갈의 소파 두라다와의 관계를 완전히 끊어버린 일본식 다과로 정립되었고, 히라도의 명산품이 되어서 1970년대 부터는 선물용 과자土産菓子로서 세일즈 포인트가 전향되었고, 2000년대에는 택배 판매를 시작합니다. 허나 그런 역사 치고는 여전히 인지도가 그리 높지않고, 나중엔 후계자 문제까지 터진지라 전망 자체는 그리 썩 밝은 것 같지 않습니다.


※ 사진자료 관련 업체 목록

히라도 츠타야 (平戸蔦屋) / 나가사키현 히라도시 키히키다쵸 431 (§실제 구매처는 미츠코시백화점 후쿠오카점)

 

 

  1. 정확히는 남만과자(南蛮菓子) [본문으로]
  2. 2016년 기준. 이후로 어떻게 바뀌었을지는 글 작성자가 현지인이 아닌고로 불명. [본문으로]
  3. 지금의 나가사키 히라도(平戸) [본문으로]
  4. 다만, 일단 이 부분에 대해서 과자 형태의 카스도스와 소파 두라다는 다과유통용인가 즉석요리인가로 구분하는 것으로 마무리 되어있긴 함. [본문으로]
  5. 이 부분은 밝혀진 것이 없음. [본문으로]
  6. 지금의 코게츠도로호(湖月堂老舗) [본문으로]
  7. 厚生大臣賞, 현재의 후생노동성(한국으로 치면 고용노동부와 보건복지부를 합친 것.)의 장관상 정도에 해당함.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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